수많은 선택과 불확실함 속에서도 자신만의 기준으로 답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일을 대하는 태도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들여다보며 ‘나답게 사는 법’을 함께 고민합니다. 아파트멘터리와 함께 공간을 완성한 사람들의 이야기.

결과보다, 그 사이의 시간을 보는 사람 — 파라핀 아티스트 김수현. 파라핀 왁스로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는 작가 김수현님을 만났습니다. 인터뷰 내내 느껴진 건 단단한 자신감이었어요.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게 실패는 아니다”라는 말이 유독 기억에 남았는데, 그 말 안에 작가님이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다 담겨 있다고 느꼈어요. 결과보다 과정에 마음을 두는 사람, 김수현 작가의 이야기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자연에서 일어나는 작고 사소한 현상에 관심이 많은 작가 김수현입니다. 저는 파라핀 왁스를 통해서 자연 속 시간의 흐름을 탐구하고 표현하고 있어요.
파라핀을 소재로 작업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파라핀의 매력은 유연하다는 거예요. 녹았다가 빠르게 굳었다 하는 유연성은 제가 필요했던 부분이에요. 그게 단점이 되기도 하는데, 더운 여름에는 관리가 어려워지고, 색상이 변하기도 해요. 부러지기도 쉽죠. 근데 그 모든 것이 계속해서 변하는 자연 같기도 해서 재밌어요.

이 작업을 시작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여행 중에 동굴을 간 적이 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천장에서 내려온 종유석과 땅에서 자라난 석순이 있었는데, 둘 사이 거리가 1cm도 안 되었는데, 저희가 살아있는 동안은 이 둘이 만나는 걸 볼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만나는 찰나를 목격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다는 아쉬움, 그렇다면 내 작업을 통해서 표현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되었어요.

파라핀 왁스를 통해 설치미술을 한다는 건 작가님에게도 처음에는 생소한 분야였을 것 같아요.
학교를 다닐 때는 페인팅을 전공했었어요. 그때는 과제처럼 하라는 것을 했었던 거고, 졸업하고 나서는 내 작업을 해야 되는데,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그걸 왜 좋아하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었어요. 작업하는 사람은 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기 때문에, 나 자신에 대해서 끊임없이 탐구해야 하는 거 같아요. 저는 결과물을 보더라도 그 과정은 어땠을까 생각하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걸 좋아해요. 자연이 지금 모습을 하고 있는 데는 영겁의 시간을 거친 과정이 있는데, 사람이 그 과정을 전부 지켜보는 건 불가능하니까, 제 작업은 그런 걸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과정을 보는 게 왜 좋으셨어요?
처음과 끝만 알면 재미가 없는 것 같아요. 그 과정을 봐야지 진짜 그 결과물을 아는 거라고 생각해요. 전시를 보더라도 결과물만 전시할 때와 과정까지 같이 보여줬을 때, 관객의 머릿속에서 파생되는 궁금한 것들. 그런 게 있을 때 재밌고 흥미롭다고 생각해요.


나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작가는 모든 선택에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불확실한 것에 대한 불안이 있을 거 같아요. 작가님은 내 의도대로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 때의 두려움은 없으세요?
미술에는 맞고 틀리고가 없다고 생각해요. 조금 덜 좋은 선택을 했을 수는 있지만, 그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거 같아요. 의도와 다르게 되어서 발견하는 새로운 즐거움도 있고요. 예를 들어, 한 번은 투명 아크릴을 둘러서 파라핀이 쌓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싶었는데, 왁스가 떨어지면서 튀다 보니 아크릴을 다 덮는 바람에 볼 수가 없었어요. 근데 이후에 벽 근처에 두고 작업했더니 파라핀이 튄 흔적이 하나의 작품처럼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그 뒤에 캔버스를 두기 시작했어요. 제 처음 의도만 생각하면 이건 실패한 거지만 그걸 통해서 새로운 발견이 있었잖아요. 그런 게 재밌어요.



작업실에서의 인터뷰를 마친 후 집으로 공간을 옮겨서 대화를 이어갔어요. 집을 소개시켜주시면서 눈에 띄었던 정원에 단풍나무 한 그루, 아이가 태어난 걸 기념해 심은 거라고 해요. 매일 아침 아이와 나무에 물을 주며 시간을 보낸다는 작가님의 모습이 상상이 돼서 좋았습니다.

작업하실 때 과정을 중요하게 보신다고 말씀 주셨어요. 집을 리모델링하는 과정은 어떠셨어요?
너무너무 즐거웠어요. 자재를 보러 다니고 고르는 과정에서 남편과 의견이 다를 때도 있었는데, 저희가 의견을 맞춰가는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공간이라서 더 애착이 가요. 입주하고 나서 남편이랑 하는 말이 그때 그 과정이 너무너무 즐거웠다고, 우리가 하나씩 다 골라서 더 좋은 것 같다고 자주 얘기해요.

벽에 걸어둔 그림이 이번 인테리어 공사 중에 그리신 작품이라고 들었어요.
남편이랑 갔던 여행지 중 좋았던 곳들을 표현한 그림이에요. 사실 남편이 제 작업물을 걸자고 했을 때 처음에는 반대했었는데, 생각해 보니 집을 고치는 게 굉장히 큰일인데 즐거움이 묻어나는 우리의 프로젝트로 만들고 싶었어요.

시간이 흘렀을 때 이 집이 작가님에게 어떤 공간으로 남으면 좋을 것 같으세요?
흔적이 남아있는 집. 지금은 리모델링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다 깔끔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아이가 구둣주걱으로 찍은 자국이 여기저기 있어요. 그리고 이런 자국은 점점 많아질 텐데, 남편이랑 이런 거 때문에 아이를 혼내지도, 저희가 스트레스받지도 말자고 얘기해요. 오히려 훗날 그 흔적들을 보면서 추억할 게 많은 집이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이번 콘텐츠 타이틀이 ‘나답게 사는 편’인데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나답게 산다는 건 어떤 건가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굉장히 잘 아는 것 같아요.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만 작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끊임없이 탐구하는 삶, 그게 나답게 사는 거라고 생각해요.

마치고 나니, 파라핀이 쌓여 작품이 되고 아이의 자국이 집에 남는 것이 다르게 보이지 않았어요. 결과보다 그 사이의 시간과 흔적을 더 아끼는 마음, 작업실에서도 집에서도 똑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