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사는 편

플랜트 디자이너 이구름

수많은 선택과 불확실함 속에서도 자신만의 기준으로 답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일을 대하는 태도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들여다보며 ‘나답게 사는 법’을 함께 고민합니다. 아파트멘터리와 함께 공간을 완성한 사람들의 이야기.

플랜트 디자이너 이구름

서울 성수동에서 슬로우파마씨를 운영하는 플랜트 디자이너 이구름님을 만났습니다. 인터뷰 내내 느껴진 건 변수를 대하는 담담함이었습니다. 날씨도, 계절도, 식물의 컨디션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을 하면서 그것을 이겨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가는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같았거든요. 변수를 통제하는 대신, 대응할 방법을 늘려가는 사람, 이구름 디자이너의 이야기입니다.

플랜트 디자이너 이구름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슬로우파마씨를 운영하는 이구름입니다. 슬로우파마씨는 식물을 통해서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계절과 시간에 따라 모습을 바꾸는 식물은, 바라보는 이들에게 생기를 준다고 믿어요.

구름님이 식물을 좋아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식물은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사람이 아무리 계획 해도 식물은 자기 속도로 자라고, 계절에 따라 달라지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움직여요. 일을 하다 보면 무엇이든 계획하고 완성하려 하잖아요. 그런데 식물은 완성된 상태가 없어요. 오늘의 모습과 한 달 뒤 모습이 다르고, 공간을 계속 변화시키죠. 그런 살아있는 느낌을 좋아해요.

플랜트 디자이너 이구름

처음 슬로우파마씨가 등장했을 때는 ‘플랜테리어’는 생소한 영역이었는데 그 시작은 어떠셨어요?
처음에는 식물이라는 것이 하나의 전문적인 공간 산업으로 인식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해서 직업으로 만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시장이 없었기 때문에 제 방식대로 해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미 존재하는 정답을 따라가기보다 식물을 어떻게 보여주고, 어떻게 공간에 적용할지를 계속 스스로 만들어야 했거든요. 돌아보면 그 과정이 지금의 슬로우파마씨를 만든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플랜트 디자이너 이구름
플랜트 디자이너 이구름

식물을 다룰 때 수많은 변수가 있을 것 같아요.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는 없으신가요?
굉장히 많아요. 지금도 식물을 다루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젝트를 할 때는 도면도 있고 계획도 있지만 식물은 예상한 대로 움직이지 않거든요. 예전에는 계획한 모습을 정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모든 것을 통제하기보다 변화에 대응할 방법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실력이라고 생각해요. 식물을 다루면서 그런 부분을 배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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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식물로 채우는 건 육체적으로 힘든 작업일텐데, 계속하게 되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결국은 공간이 완전히 달라지는 순간을 보는 재미인 것 같아요.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흙과 나무가 들어오고 식물이 자리 잡으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는 순간이 있어요. 우리가 만든 정원에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머무르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때 정말 좋아요. 결국 제가 만드는 것은 사람이 머물고 싶어지는 장면인 것 같아요. 새벽에 일을 시작하기도 하고 날씨가 안좋을 땐 힘들지만, 완성된 공간을 보고 ‘아, 이 장면 때문에 그 시간을 보냈구나’ 생각하면 다시 다음 일을 하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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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에 운영하다 멈춘 원데이클래스를 다시 시작하셨어요. 그 이유가 궁금해요.
브랜드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기업 프로젝트의 비중이 커졌어요. 브랜드와 큰 공간에서 함께 작업하는 것도 재밌지만, 어느 순간 우리가 처음 시작했던 방식이 그리워졌어요. 그때는 손님과 직접 만나 식물 이야기를 하고 같이 무언가를 만들면서 브랜드를 경험하게 했거든요. 최근에 다시 클래스를 해보니, 이런 작은 만남이 저희를 깊게 이해하도록 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두 가지 모두 병행하고 싶어요.

플랜트 디자이너 이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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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님의 글에는 ‘꿈꾸던’, ‘상상했던’ 같은 표현이 자주 등장해요. 상상했던 모습과 지금의 삶은 닮아있나요?
놀랍게도 막연하게 상상한 장면 중에는 이루어진 것들이 꽤 많아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식물로 공간을 만들고, 우리의 작업실을 갖고, 좋아하는 브랜드들과 프로젝트를 하는 것. 하지만 그때는 그 장면 뒤에 얼마나 많은 책임과 결정이 따라오는지 몰랐어요. 예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삶’을 상상했다면 지금은 그 일을 지속하기 위해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를 더 많이 생각합니다. 훨씬 현실적이고 책임이 많은 모습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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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하는 집은 어떤 공간으로 만들고 싶으셨어요?
쇼룸과는 다른, 순백의 스케치북 같은 곳이길 바랐어요. 그래서 집에 돌아오면 마음이 편해요. 회사에서의 역할은 벗어두고 나의 모습으로 지낼 수 있는 공간이라, 제 삶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곳이에요.

플랜트 디자이너 이구름

리모델링하고 3년이 지났어요. 처음과 지금 이 집이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면요?
예전에는 공간 자체가 먼저 보였어요. 자재나 가구, 조명처럼 우리가 선택한 것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던 것 같아요. 지금은 시간이 쌓인 공간이 훨씬 좋다고 느껴요. 아이들이 자라면서 사용하던 공간도 달라지고, 가구 위치도 변하면서 흔적이 생겼어요. 식물도 마찬가지잖아요. 처음 심었을 때보다 몇 년 지나 자리를 잡았을 때 더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처럼 집도 사람이 오래 살면서 조금씩 자기 모습을 만들어 가는 것 같아요.

플랜트 디자이너 이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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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름 님이 생각하는 ‘나답게’ 산다는 건 어떤건가요?
살면서 역할이 많아지잖아요. 브랜드의 대표로, 엄마이자 누군가의 아내로, 또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죠. 그 역할에 맞는 선택만 하고 살면 어느 순간 나를 잘 모르게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자신에게 자주 물어요. ‘지금 내가 이걸 좋아하고 있나’, ‘이것이 내가 원하는 방향인가’ 가능하면 좋아하는 쪽으로 아주 조금씩 움직이려고 해요. 내가 좋아하는 것과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을 시간을 들여 파악하고 그 길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 무서워하지 않고 걸어가는 것. 그게 나답게 사는 거라고 생각해요.

플랜트 디자이너 이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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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이 없던 시장에서 시작해, 정해진 답이 없는 식물과 오래 일해온 사람. 그 시간이 구름님에게 가르쳐준 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순간을 막는 법이 아니라, 그 순간을 지나는 방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통제하지 않고, 대응하며 자라는 것. 그게 구름님이 말하는 나답게 사는 방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