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사는 편

이탈리안 셰프 최민규

수많은 선택과 불확실함 속에서도 자신만의 기준으로 답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일을 대하는 태도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들여다보며 ‘나답게 사는 법’을 함께 고민합니다. 아파트멘터리와 함께 공간을 완성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탈리안 셰프 최민규

서래마을에서 이탈리아 음식점을 운영하는 셰프 최민규님을 만났습니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오래 들여다본 건 셰프님의 기록들이었어요. 인터뷰 내내 느껴진 건 그 기록들과 닮은 사람이었습니다. 거창한 목표 없이 “그냥 한다”고 말하지만, 그 말 안에 오랫동안 자신을 다듬어온 사람의 무게가 담겨 있었거든요. 거창하지 않게, 매일 제대로 해내는 사람, 최민규 셰프의 이야기입니다.

이탈리안 셰프 최민규

반갑습니다 셰프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탈리아 음식점 뜨라또리아 로마냐를 운영하고 있는 셰프 최민규입니다. 이탈리아에서 배우고 몸으로 익힌 음식과 정서를 서래마을에서 제 식으로 풀어내고 있어요.

뜨라또리아 로마냐는 어떤 공간인가요?
뜨라또리아는 격식보다 따뜻함이 먼저인, 동네 사람들이 편하게 드나드는 식당을 뜻해요. 제가 이탈리아에서 느꼈던 사람을 대하는 환대와 편안함을 서래마을로 옮겨온 곳이 로마냐입니다.

이탈리안 셰프 최민규
이탈리안 셰프 최민규

이탈리아의 명문 요리학교 ALMA를 졸업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언제부터 요리를 업으로 하고 싶으셨어요?
정말 우연한 계기로 요리학원에 다닌 적이 있어요. 그때 양파를 볶는 과정이 있었는데, 평소 아버지와 중국집에서 먹던 매운 양파가 카라멜라이징돼 만드는 단맛과 풍미가 큰 충격이었어요. 그리고는 고등학생 때 처음으로 ‘내가 정말 뭘 좋아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했을 때, 요리가 제가 내린 답이었어요. 그때의 기억 때문에 로마냐는 이탈리아 식당이지만, 어니언 스프를 메뉴로 두고 있어요. 양파는 저를 요리의 세계로 이끌어준 재료이기 때문에 메뉴로 넣고 싶었거든요.

이탈리안 셰프 최민규

꿈꾸던 일을 하면서 산다는 건 어떤 건가요? 생각했던 것 만큼 좋았던 것, 그리고 생각했던 것과 가장 다른 게 있다면요?
셰프라는 직업은 혼자 멋진 요리를 하는 사람일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하나의 배를 이끄는 함장에 가깝더라고요. 홀과 주방이 서로를 채워주며 배가 움직일 수 있도록 속도와 방향을 맞추는 거죠. 이 일을 하면서 냉장고나 식기를 하나씩 업그레이드하면서 디테일을 채워가는 건 하나의 예상치 못한 재미예요. 화려한 한 방은 아니지만, 그렇게 매일 조금씩 더 나은 공간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탈리안 셰프 최민규
이탈리안 셰프 최민규

예전에 운영하셨던 글루글루는 어떤 공간이었나요? 로마냐로 무대를 바꾼 계기가 궁금해요.
글루글루는 제가 처음으로 헤드셰프로 운영했던 공간이었어요. 지금보다 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열정이 넘치던 시기였어요. 처음으로 ‘제 요리’를 하고 팀을 이끌어본 시간이었죠. 그때 찍었던 사진을 보면 당시엔 쿨해보였는데, 지금보면 부끄러운 것들이 있어요. 그래도 그때의 부족함이 아직도 제게는 배움으로 남아있어요. 지금은 오히려 덜어내고, 깊이를 찾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무대를 바꿨다기 보다는, 로마냐로 익어가고 있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부족했던 시절을 거름 삼아 지금의 저로 천천히 익어가는 중인거죠.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남겨두어라. 일로 하게 되면 그마저도 싫어진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에 대한 셰프님 생각은 어떠세요?
저도 요리가 싫어진 적이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이에요.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더 아플 때도 있었고요. 하지만 그만두고 싶을 만큼 힘들어도 결국 다음 날 아침에 또 주방 앞에 서게 되더라고요.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힘들 때 돌아갈 자리를 하나 남겨두는 것 같아요. 다만 모든 일이 좋아하는 마음으로 버틸 수 있는 건 초반 뿐이고, 그 다음은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해요.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일로 만드는 과정, 그게 업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탈리안 셰프 최민규

유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기록을 해오셨는데, 그 습관이 생긴 계기가 있을까요?
이탈리아에서 유학할 때, 공황장애가 온 적이 있어요. 주방에 있다는 생각만으로 숨이 막히고 죽을 것만 같았어요. 한국에 돌아오자니 비행기가 무섭더라고요. 섬에 갇힌 기분이었어요. 그러다 투박하더라도 제 현실을 적다보면, 그 글을 읽는 누군가가 저를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적다보니, 제 생각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되더라고요. 보이니까 바꿀 수도 있었어요. 나를 힘들게 하는 일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분류해가면서 저를 조금씩 바꿨습니다. 기록은 제게 살아남기 위해서 시작한 일이었어요.

생각을 정리하고 기록하다 보면 일에 대한, 또는 삶에 대한 철학이 생길 것 같아요.
거창한 철학이나 신념은 오히려 어렸을 때 많았던 거 같아요. 오히려 지금은 그냥 최선을 다해서 하려는게 전부예요. 누군가는 마이클 잭슨이나 파파로티처럼 최고가 되기를 목표로 삼지만, 누구는 노래가 좋아서 그걸 업으로 삼잖아요. 저는 후자에 가까워요. 대단한 무언가가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매일 제대로 해내는 것, 그게 제가 가진 유일한 철학이라면 철학이에요.

이탈리안 셰프 최민규
이탈리안 셰프 최민규
이탈리안 셰프 최민규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셰프님의 하루와 공간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이탈리안 셰프 최민규

셰프님의 쉬는 날의 하루 일과는 어떤가요?
쉬는 날에 웬만하면 약속도 안잡고 단조롭게 보내요. 일어나면 욕조에 물을 받고 커피를 내리고, 반신욕하면서 메일을 쓰거나 글을 써요. 이미 일하면서 자극이 많기 때문에, 오로지 집에서만 쉬면서 외부 자극을 안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주방을 정말 멋지게 만드셨는데, 공간을 위한 아이디어도 남다르셨을 거 같아요.
저희 부부가 집을 만들 때 좀 과감했어요. 아일랜드를 바 테이블처럼 쓸 수 있게 면적을 넓히고, 다이닝 공간을 따로 두려고 방 하나를 아예 없앴거든요. 제가 요리하면서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다이닝룸에서 차나 와인을 마시고요. 매일 요리하는 집은 아니지만,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기 위한 집이라고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탈리안 셰프 최민규

그 외 집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채광과 차경이에요. 원래는 현관에 들어서면 방들이 앞에 있어 거실 말고는 빛이 거의 들지 않는 구조였어요. 그래서 현관 앞 방을 하나 없애고 다이닝 공간으로 만들었죠. 지금은 패브릭 소재 중문 너머로 햇빛이 스며드는 게 정말 예뻐요. 안방은 바닥을 헤링본, 베란다 문도 프렌치 도어를 써 아늑한 유럽풍 느낌을 냈어요. 문을 열고 나가면 작은 마당이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주고 싶어서요. 안방 화장실에는 과감하게 청록색 대리석과 오렌지색 수전을 골랐어요. 너무 과했나 싶었지만, 지금은 아주 만족해요. 저에게는 익숙한 이 공간이, 처음 보는 누군가에겐 신기하고 낯설 수 있잖아요. 그 대비가, 여기가 온전히 제 공간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거 같아요.

이탈리안 셰프 최민규
이탈리안 셰프 최민규

마지막으로, 셰프님에게 나답게 산다는 건 어떤 건가요?
누군가는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로 살지만, 저는 좋아하는 일을 매일 제대로 해내는 사람이에요. 거창한 포부 없이 ‘그냥 한다’는 게 어떻게 보면 무책임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지금 그게 가장 멋지고 책임감 있는 일이라고 느껴요. 남들이 정한 ‘셰프는 이래야 한다’를 따르는 게 아니라, 제 작은 세상을 제 기준대로 천천히 익혀가는 것. 그게 저한테는 나답게 사는 거예요.

이탈리안 셰프 최민규

살아남기 위해 시작한 기록이, 지금의 최민규 셰프님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연히 손에 쥔 길을 진심으로 파고들고, 부족했던 시절을 거름 삼아 천천히 익어온 사람. 거창하지 않게, 매일 제대로. 그게 셰프님이 말하는 나답게 사는 방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