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김참새
북한산 자락의 풍광이 차분히 내려앉은 김참새의 구기동 작업실. 그녀 작품의 풍부한 색채와 따스한 정서는 복잡한 세계와 분명 단절되어 있다.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작품을 내놓는 그녀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김참새 작가의 인터뷰 영상 CLICK
프랑스의 조용하고 정갈한 마을에서 6년 가까이 살았어요. 오래된 집을 각자의 개성에 맞게 예쁘게 가꾸며 사는 그들의 삶이 제 삶에도 은근히 스며들었죠. 서울에 온 뒤 얼마간은 바쁘고 삭막한 도시에 적응하기 어려웠어요. 서울에서 태어나 몇 십 년을 살았는데 말이죠. 프랑스에서 보낸 6년이 저를 많이 바꿔놓았나 봐요. 어느 날 산책하다 이 동네에 다다랐는데, 귓가에 프랑스어가 들렸어요. 알고 보니 주변에 프랑스 학교와 북한산 국립공원이 있고 작은 강이 흐르고 있었죠. 이 동네 특유의 호젓한 정취에 어떤 확신이 섰죠.
김참새 작가가 들고 있는 머그컵과 데스크 위 화병은 29CM 제품.
원래 단층 주택을 마음에 두고 있었어요. 그런데 부동산 사장님의 권유로 이 공간의 문을 연 순간 커다란 창에 북한산이 가득 들어와 있더군요. 이 전망을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같은 건물에 예술가들도 많이 계셔서 그들처럼 저도 이곳에 잘 적응해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 싶었어요.
아파트멘터리를 컬러와 단어로 표현하고 있는 김참새 작가.
엄마가 절 임신하셨을 때부터 있었던 일이 적혀 있어요. 제가 나오려고 해 급하게 차를 타고 병원에 간 일이며, 제게 처음 모유를 주고 제 이름을 지은 이야기들이요. 제가 처음 글씨를 쓴 흔적도 있어요. ‘유소유’라 적혀 있는데 제가 왜 그렇게 썼는지는 모르겠어요. 맥시멀리스트로 살아갈 걸 예견한 걸까요? (웃음) 일기장을 넘기다 보면 소란했던 마음이 진정되며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머니의 빛 바랜 일기장. 작가가 어릴 때 그린 그림들도 저장되어 있다.
티 테이블이 있는 공간을 좋아해요. 이곳에서 차를 마시며 할 일을 정리하거나 책을 읽으며 마음을 가다듬어요. 영원히 소유하고 싶은 물건이라면 엄마의 일기장과 아빠가 주신 수동 카메라 정도일까요? 아빠는 제가 태어날 때부터 이 카메라로 절 찍어주셨어요.
중학생 때부터 함께 시간을 보낸 강아지 ‘바다’를 그린 그림이요. 바다는 몇 해 전, 제 곁을 떠났어요. 바다가 떠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붓을 잡을 때마다 울음이 터져 완성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흰 강아지는 작가가 바다가 걷는 모양을 보고 즉흥적으로 빚어낸 작품이다. 선반 위의 블루 모빌은 29CM 제품.
그간 인터뷰할 때 영감의 원천을 물으면 늘 영화와 전시, 책, 음악이라고 답했어요. 근데 요샌 매일 제 삶 자체에서 영감을 받고 있어요. 길을 걷다가 문득 과거에 누군가가 했던 말, 강아지의 어떤 행동 등 일상에서요. 꼭 보물찾기 같아요. 언제 어디서 어떤 영감을 얻을지 예측이 불가능하니까요.
사람, 사물, 동물 등 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엔 다양한 면이 존재한다고 봐요. 저도 그렇고요. 저를 처음 본 분들은 명랑하다고 하는데, 실은 제가 우울한 구석이 굉장히 많아요. 제 감정과 성향이 작품에 드러났는지, 관객들이 가끔 그런 평을 해주세요. 아마 그림에 집중해 저와 함께 호흡해주시는 거겠죠. 그럴 때면 ‘역시 세상엔 비밀이 없구나’ 하고 생각해요.
제 그림이 뭐라고요. (웃음) 그런 말을 들으면 참 감사해요. 그림을 그리다 보면 복잡한 상념이 정리될 때가 있어요. 견디기 힘든 일이 있을 때 그림을 그리는 건 사실 괴롭죠. 하지만 그림이 완성될 무렵엔 만신창이이던 마음이 한차례 정리돼요.
저도 제가 뭔가를 관찰할 때 색을 먼저 보고, 기억도 색으로 한다는 사실을 최근에 깨달았어요. 요리의 색감, 누군가의 옷차림,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에서 보이는 색 등 온종일 색에 대해 생각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어요.
그 부분은 저도 많이 생각하는데, 제가 가고 싶은 길은 뚜렷해요. 제안해주시는 모든 브랜드와 협업하고 싶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좋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고 보죠. 점차 제 색깔이 흐릿해질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협업은 가능한 한 예민하게 결정해요. 협업을 결정할 땐 무엇보다 브랜드가 오랜 시간 지켜온 이념과 스타일을 따르면서 저 또한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요.
영혼부터 근사한 사람들. 일부러 잘 보이려고 꾸미지 않는데도 자신과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깊이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굉장히 선명하고 멋진 사람이 되어 있는 거죠.
Bon Chic! (멋있어, 근사해!)
좋은 제품이 많은데 특히 그란과 라이프 시리즈에 만족합니다. 그란 타월은 엄청난 양의 수분을 흡수하거든요. 저처럼 머리숱이 많은 사람은 감탄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또 라이프 시리즈 구스다운 이불은 너무 따뜻해서 전기장판이 필요 없어요.
두께가 얇고 건조 속도가 빨라 두루 활용하기 좋은 그란의 와플 타월.
우리 삶에 한 발짝 들어온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멋지긴 한데 이게 과연 꼭 필요할까’ 하는 의문이 드는 제품이 없죠. 라이프스타일 제품군을 학구적인 태도로 깊이 파고들어 현명한 소비를 유도하는 부분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사용자 입장에서 고심한다는 방증이니까요.
로켓과 토성 모양의 쿠션, 아이보리 러그와 테이블 아래의 네이비 러그는 스톨리, 디저트를 가지런하게 담은 테이블웨어는 29CM 제품.
핸드메이드 라왕 책장은 리튼 제품.
얼마 전 친구가 편지를 건네주었어요. ‘너는 매일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투명하고 아늑한 위로를 그린다고 생각해.
참새가 얼마나 아름다운 화가인지 잊지 마’라고 쓰여 있었죠.
책장 위 탁상시계는 스톨리, 와이어리스 블랙 조명은 29CM 제품.
지난 4개월은 개인전, 4개월은 밀린 협업을 하면서 보냈어요. 슬슬 다음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는데, 요즘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나이를 먹듯 내 작업의 방향도 나이를 먹어가겠구나. 이왕이면 멋지게 잘 나이 먹어가면 좋겠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든, 회화 작업을 꾸준히 계속할 거란 건 분명해요.
의자에 걸쳐두고 무릎담요로 사용하는 블랭킷은 스톨리 제품.
Editor 성보람, PD 이예선, Photographer 조이현, Reviser 최현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