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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조선 인터뷰 | PD 출신 사장님의 '궁극의 인테리어', 공간이 바뀌면 삶도 바뀐다


인테리어업체 아파트멘터리의 윤소연 대표는 2002년 대학 입학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 자취를

시작했다. 결혼 전까지 이사만 열 번. 하숙집만 네 군데를 옮겨 다녔고, 친척 집에서 지내기도 했다.

사람답게 살아보자며 월세 아파트를 얻어 룸메이트와 동거한 적도 여러 번이다. 


“20대 때는 주거공간의 불안정을 너무 많이 겪었어요. 대구 출신인 저는 자취 10년 차,

부산 출신인 남편은 자취 15년 차였죠. 우리 부부에게 결혼의 의미는 ‘주거 안정’이었어요.”


당시 MBC 편성피디였던 윤소연 대표는 같은 방송사의 손창우 예능피디(현 tvN 피디)를 만나

결혼하면서 부부의 지분보다 은행과 전세 세입자의 지분이 더 많은 33평 아파트를 구입했다.


평생 꿈꿔온 멋진 집으로 꾸미기 위해 인테리어업체에 전화를 돌렸다.

가장 마음에 드는 업체에서 받은 견적은 1억원, 깔끔한 집 단장 정도로 가장 싸게 견적을 내준 곳마저

3천만원이었다. 셀프 인테리어를 결심했다. 집주인이 디자이너 역할을 하고

철거, 목공사, 페인트 시공, 타일 공사 등 공사 범위를 확정해 각각의 기술자를 섭외하는 방식이었다.

준비기간 100일, 실제 공사 2주. 기존 인테리어업체에서 뽑아준 견적의 절반 가격으로 취향 저격

북유럽 스타일 아파트를 실현해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엮어 책으로 냈고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다. 








인테리어 과정 엮은 책, 베스트셀러 되다




Q. <인테리어 원 북>은 세세한 과정 하나하나가 다 담겨 있더군요. 정말 이 책 한 권이면 누구나 인테리어 도사가 될 수 있을 것 같던데요. 

출판사 편집장님도 놀라셨어요.(웃음) 심지어 그게 분량이 줄어든 거예요. 하나라도 더 넣고 싶어서 500페이지로 만들자고 했었어요. 편집장님이랑 에디터님 말씀 들은 게 잘한 일인 것 같아요. 



Q. 이 많은 정보와 자료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게 아깝지는 않았나요?

묵혀놓는다고 좋은 것도 아니잖아요.(웃음) 회사 다닐 때 보고서 쓰는 게 제 업무였는데, 이 내용도 보고서 쓰듯이 썼던 것 같아요. 정리를 하는 것 자체에서 희열을 느꼈어요. 사람들이 보고 피드백을 보내주는 게 재밌었어요. 



Q. 심지어 인테리어업체 직원들도 이 책으로 공부했다고 하더군요. 

맞아요.(웃음) 책을 출간했을 때 교보문고와 협업으로 인테리어 클래스를 한 적이 있었는데 건설회사 직원들, 가구 한샘 분들, 인테리어디자이너 분들이 오셔서 신기했어요. 



Q. 파격적인 가격으로 양질의 인테리어를 해냈습니다. 다른 업체들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은 적은 없었나요? 

한 건도 없었어요. 업계의 비밀을 파헤치는 내용이기도 하니까 전화가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디자이너 분들이나 자재회사의 담당자들을 만나보면 오히려 인테리어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시장이 활성화 됐다고 하더라고요. 이케아가 들어왔을 때 한샘이 망할 줄 알았는데 더 잘됐잖아요. 많은 분들이 이 책을 보고 집을 고쳐야겠다는 동기를 얻고, 업체에 맡길 때 기초지식을 쌓는 용도로 사용하시는 것 같아요.












공간이 바꾼 삶, 퇴사하고 회사를 차리다




Q. 책 출간 뒤 9년 동안 다닌 회사를 퇴사하셨어요. 반년 정도 후에 인테리어업체인 ‘아파트멘터리’를 차리셨는데, 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편성피디는 시청률을 분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신설하는 역할을 하는 일종의 사무직이에요. 재미도 있었고 안정적이었지만 조금 더 활동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늘 있었어요. 이 일이라면 방송국에 오는 것만큼 재밌게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작년 8월에 회사를 그만두고 같은 해 12월에 법인을 설립했어요. 벤처캐피탈의 투자를 받아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스타트업의 형태로요. 



Q. 회사의 모토가 ‘공간이 삶을 바꾼 이야기’예요. 

제 인생이 그랬으니까요. 사실 이쪽 일을 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안 했거든요. 그 계기가 집을 고친 것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했어요. 안정된 공간이 있으니까 삶이 풍요로워졌고 조금 더 여유로워졌죠. 많은 사람들이 공간이 변하는 경험을 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Q. 어떤 사람들과 함께 회사를 꾸리고 있나요? 

저처럼 자기주도적으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친구들이에요. 한 친구는 tvN에서 <꽃보다 할배>나 <삼시세끼> 같은 프로그램을 마케팅하다가 YG엔터테인먼트에서 콘텐츠 팀장으로 있었는데 지난달에 때려치우고 왔고요.(웃음) 또 다른 친구는 3D 코디로 유명한 디스트릭트홀딩스에서 브랜딩 디자이너로 5년 넘게 일하다 왔어요. 제가 설득하지는 않았어요. 잘나가는 친구들인데 부담스럽잖아요.(웃음) 시스템 안에서도 잘하던 친구들이었지만 자기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던 것 같아요.



Q. 셀프 인테리어를 하셨을 때처럼 고객들이 싼 가격에 인테리어 서비스를 받아볼 수 있나요? 

이쪽 비즈니스를 공부해보니 어떤 자재를 쓰느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에요. 도배 같은 경우도 아저씨 세 분이 와서 날림으로 하는 것과 아저씨 다섯 분이 와서 꼼꼼히 바르는 것은 50만~60만원 차이가 나죠. 또 디자인 스튜디오에서는 평당 200만~300만원으로, 30평 기준 6천만원에서 1억원의 견적을 내주시는데 저도 그게 비싸다고 느꼈었거든요. 그런데 그만큼의 디자인비와 안목이 들어가는 거더라고요. 저희가 지향하는 건 디자인업체와 동네 인테리어 사이의 견적에서 좀 더 좋은 퀄리티를 구현하는 거예요. 자라 같은 느낌을 타깃으로 하는 거죠. 지금까지는 저처럼 옷을 직접 만들어 입느냐, 디자이너가 만든 엄청 비싼 옷을 입느냐,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었거든요. 아니면 자기랑 디자인감은 맞지 않지만 깨끗하게 해주는 동네 업체 찾아서 하는 것밖에 없었죠. 저희는 그 중간을 타기팅하고 있어요.












성공비결은 이야기 융합




Q. 첫 번째 사업이 아닙니다. 대학 시절 인터넷 쇼핑몰로 성공했었다고요. 

대학 다닐 때 같이 언론고시 스터디를 하던 언니랑 공부하기 싫다면서 ‘우리 이렇게 살지 말고 돈이라도 벌자’는 생각으로 인터넷에서 옷을 팔았었어요. 2005년 가을이었는데 네이버에 등록한 171번째 쇼핑몰이었어요. 초창기였던 거죠. 취미로 시작했는데 순식간에 되게 잘됐어요. 지금 CEO에 비할 건 아니지만 학생치고는 많은 돈을 벌었죠. 그때 계속했으면 재벌이 됐을 수도 있어요.(웃음) 저는 SBS 필기시험 붙어서 그만두고, 언니도 온스타일 피디로 가면서 그만뒀는데 그 짜릿함을 못 잊겠더라고요. 제가 기획한 상품을 누군가가 반응해서 산다는 것 자체를요. 당시에는 경제관념이 없어서 돈이 소중하다는 생각보다는 나의 취향을 알아주고 사준다는 게 기뻤어요.



Q. 그때의 경험이 지금 사업에도 도움이 되나요? 

사업가 기질이 있었다는 생각은 드는 것 같아요. 제가 상품을 기획하고, 그 상품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들이요. 같이 했던 언니가 온스타일에 근무하다가 지금은 네이버 쇼핑 윈도우 담당자로 일하고 있는데요. 그때는 쇼핑몰에 옷 사진밖에 없었대요. 저희가 처음으로 옷 입고 캠퍼스에서 놀고 있는 사진이나 카페에서 앉아 있는 사진 같은 걸 올렸던 거죠. 사진 밑에 옷과 장소에 대한 스토리를 썼었어요. 콘텐츠를 만드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Q. <인테리어 원 북>도 단순히 정보만 나열한 것이 아니라 집을 고치게 된 배경, 과정에서의 어려움, 전문가들과의 만남 등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독자들의 공감을 더 크게 불러일으켰다는 생각이 듭니다. 늘 스토리텔링을 염두에 두시는 것 같아요.

제가 블로그를 운영했었잖아요. 콘텐츠를 쓴다는 것은 정보를 획득해서 다시 풀어내는 과정이 필요한 거예요. 생각보다 글 잘 쓰는 사람이 많지 않죠. 저는 모든 직원이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한 명 한 명이 에디터가 돼서 챕터를 하나씩 맡았어요. 인터뷰를 맡는 친구도 있고, 자재 공부를 해서 잡지 글처럼 풀어내는 친구도 있고, 디자이너는 시공일지를 쓰게 했어요.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포맷만 잡히면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거든요. 직원들은 힘들겠지만 어쩔 수 없어요.(웃음)



Q. 겉으로만 봤을 땐 천생 여자 같은데 여장부 같은 면이 다분합니다. 

저희 사무실에 있는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여성성이 0%라고 말할 거예요.(웃음) 저희 회사 남자 이사들이 오히려 여성스럽고, 인테리어디자이너 맡고 있는 이사랑 저는 거의 남자예요. 현장에서 무슨 일 생기면 남자 이사들은 뒤에 숨어 있고, 저희가 삿대질하고 싸우고 있죠.(웃음) 집을 고치는 것도 그래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피디는 순환 근무를 하거든요. 3년간 예능피디로 있었는데 촬영현장은 늘 엉망이에요.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나는데 피디가 모든 걸 결정하고 지시를 내려야 하죠. 그럴 때 꼼꼼함이나 여성스러움은 전혀 필요 없는 요소들이에요. 무데뽀 정신, ‘일단 합시다’라고 말하는 성격이 필요하죠. 제 별명이 ‘썰매 개’였어요.







임신 8개월, 내 몸은 내가 챙긴다




Q. 집을 고친 후 남편분이 너무나 만족해했습니다. 하지만 10년 된 남편의 차를 바꾸는 대신 그 돈으로 감행한 셀프 인테리어였어요. 어떻게 설득하셨나요?  

남편은 기본적으로 집안일에 별 의견이 없어요.(웃음) 차도 그냥 타면 된다면서 상관없어했는데 오히려 제가 고민을 많이 했죠. 저희 남편은 집에 대한 취향도 아예 없었어요. 회사 차리고 클라이언트 집을 고쳐주면서 느낀 건데요. 부부 둘 다 집에 대한 취향이 있으면 오히려 어려워요. 이 사람은 이 벽지가 좋고 저 사람은 저 벽지가 좋고, 이런 분들 많아요. 그런데 오히려 집 꾸밀 때는 한 명의 생각이 확실한 게 결과물이 좋게 나오더라고요. 저희 남편은 제가 회사를 그만두는 것에 대해서도 “그래 그만둬” 그런 사람이에요.(웃음)



Q. 굉장히 쿨한 부부 같기도 하고, 서로 깊이 존중하는 사이인 것 같기도 합니다. 

남편이 자기애가 강해요. 본인의 건강에는 관심이 많은데 기본적으로 와이프의 삶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어요. 나쁘게 말하면 관심이 없는 거고, 좋게 말하면 존중을 해주는 거죠. 애매한 경계에 있어요.(웃음) 저희 엄마도 부부 사이라기보다 사이좋은 룸메이트 같다고 하세요. 출판사 편집장님은 우스개로 쇼윈도부부라고 하기도 했죠.(웃음) 제가 임신 중인데요. 어떤 남자들은 ‘이거 조심해 저거 조심해’ 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저희 남편은 딱히 그런 것도 없고요. 저 같은 경우도 ‘임신했으니까 돌봐줘야 해’ 이런 기대가 없어요. 직원들도 신기하다고 해요. 제 몸이니까 제가 챙기면 되지, 굳이 많이 힘들지 않은데 남편이 절 돌봐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이상한가요.(웃음)



Q. 임신 8개월 차인데 회사 운영도 하시고, 네이버에 글을 연재 중이기도 해요. 태교는 어떻게 하고 계세요? 

하나도 못 했어요. 남편이랑 동화책을 세 번 읽어줬나. 유모차 주문해놓고 두 달째 조립도 못 했어요. 아무것도 준비 못 했는데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죠. 일하는 게 머리 쓰는 거니까 이게 태교다.(웃음)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한다고 규정해놓고 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임신하니까 주변에서 “운전해도 돼요? 다니셔도 돼요?” 물으시는데요. 제가 멘토로 삼는 여자 선배들이 다 이런 스타일이에요. “선배 태교 어떻게 했어요?” 하면 “태교한 거 없는데” 그래요.(웃음) 자기 인생 재밌게 살면 애기가 좋아할 거라는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20대와는 달라진 30대, 그리고 40대의 꿈




Q. 20대와 30대, 어떤 점이 가장 달라졌나요? 

20대에는 뭘 해도 불만족이었어요. 무언가 더 재밌는 게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이것도 놓치기 싫고, 저것도 놓치기 싫다’ 그랬죠. 이제 30대가 되니까 포기하는 부분도 생기고, 좀 내려놓다 보니 오히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됐어요. 20대였다면 절대 회사를 그만두지 못했을 거예요. 지금은 ‘회사를 내려놓으면 다음에 더 좋은 게 펼쳐지겠지’ 하는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사실 책이 잘되는 거랑 사업이 잘되는 거는 완전 다른 문제거든요. 지금도 잘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웃음) ‘해보자!’ 이런 여유가 생겼어요.

  


Q. 40대에는 무엇을 하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나요? 

지금은 스타트업이라는 분야에 뛰어들었으니까 최종 목표는 좋은 기업을 만드는 거예요. MBC에서 회사생활 할 때 3~4년 차까지 누가 누굴 욕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어요. 모두가 모두를 존중하고 자율성이 보장되고, 다들 열심히 일했었죠. 높은 연봉을 받으면서요. 아무도 근태 관리조차 하지 않았어요. 사기업에만 다녔던 분들은 ‘그게 가능해?’라고 하시는 것들이 MBC에서는 가능했었어요. 제가 경험해봤으니까 저도 그런 조직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거예요. 자긍심을 가지고 행복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기업을 만드는 게 저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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